[야고보서 2장 20~26절]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코로나로 기승을 부리는 이 때에 사람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 건강을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지켰는데,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중에도 불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불편하시더라도 꼭 마스크를 착용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조심한다고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지요. 그 이유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늘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시편 121편을 함께 읽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
그 분이 나를 지키시고 돌보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믿음 위에 단단히 서 있으셔야 합니다. 아멘...
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도 나오고, 십일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예배와 기도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드립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도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라고 찬송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평소의 삶에서 늘 불안해 합니다.
뭐 먹고 사나?
코로나 걸리지는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녀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내가 다니는 일터에가 잘못되면 어쩌나?
이렇게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한 숨을 내 쉽니다.
① 자... 이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일까요? 없는 사람일까요?
예...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종류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이 바로 귀신의 믿음이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에 여러분과 제가 함께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귀신의 믿음이 있다고 했지요. 귀신의 믿음이란 어떤 것을 귀신의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이 한 분 이신 줄을 믿는 것.
이것이 귀신의 믿음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지요. 저도 믿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는데, 무엇을 못합니까? 말씀대로 고백을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은 아는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줄은 아는데, 범사에 감사해라. 라는 말씀을 아는데, 매 순간 순간 감사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아는데, 말씀대로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습니다. 용서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않습니다. 평안해야 하는데, 평안하지 않고 불안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내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라 귀신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뭐냐?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즉,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저는 “의로 인정받은 믿음”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오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아름다운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 하면, 떠오르는 일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보면,
75세에 하나님이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갔다.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독자 이상을 제물로 바쳤다.
자... 이것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것은 어떤 행동을 나타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갔다. 걸어서 갔겠지요. 행동을 했습니다.
아들을 낳았다.
제물로 바쳤다.
다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렇게 기록을 한 겁니다.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강조하느냐 하면, 행함을 강조합니다. 행해야 진정한 믿음이다. 자.. 맞습니까? 틀립니까?
쉽게 얘기하면, 교회 나와야 진정한 믿음이다. 자... 맞습니까? 틀립니까?
여러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태초에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마귀가 사람들 타락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③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면, 무엇을 행해야 의롭게 됩니까?
여러분은 의롭습니까? 무엇을 했기에 의롭다고 여기십니까? 가난한 자를 도와주었다. 병든 자를 불쌍히 여겼다. 교회에 나왔다. 예배를 드렸다. 봉사를 했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의롭다는 겁니까? 율법을 다 지켰다. 그래서 의롭다는 겁니까?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여러분 다 지키셨습니까? 행함으로 의롭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성경의 말씀을 다 지키셔야 합니다. 다 잘 지켰는데, 하나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불의한 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설교하고, 또 여러분이 암송하신 것처럼
[약 2:10,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야고보서도 그렇고, 성경도 그렇고,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정죄하고 비판하고 싸우고 판단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다... 이 율법주의 때문에 그런 겁니다. 행함으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좀 유창하게 하면, 야... 저 사람 믿음이 좋은 가봐. 이게 다 뭐예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겁니다. 내가 교회에 헌금을 좀 많이 했는데, 내가 교회에서 봉사를 좀 했는데, 사람들이 안 알아 줘요. 그 마음이 섭섭해 해요. 화가 나요. 그래서 말합니다. 내가 다시는 하나 봐라. 그것이 뭘 이야기하는 겁니까? 바로 행함으로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행함을 강조하면, 자기 의가 드러납니다. 내가 이렇게 했다... 너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잘못 신앙 생활한다. 그리곤 정죄를 하며, 신앙 생활 똑바로 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 지적하고 싸웁니다. 그것이 다 행함으로 의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뭐다. 다 귀신의 믿음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가 하면, 자기도 다 지키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지키라고 한다는 겁니다.
나는 100가지 지킨다. 그런데, 너는 10가지 밖에 못지킨다. 그래서 나는 너 보다 잘낫다. 믿음 좋다. 이것이 바로 행함으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그러면, 1000가지를 지킨 사람이 볼 때는 100가지 지킨 사람보고 너는 그게 뭐냐...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럼, 만가지 지킨 사람은 천가지 지킨 사람보고 너는 그게 뭐냐...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얼마나 더 지켜야, 행해야 의롭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왜요?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완전하신 분이 딱 한 분 계셨는데, 율법을 다 지키신 분이 딱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신 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겁니다. 의롭지 않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겁니다. 무엇을 믿어요? 예수님이 나 대신 율법을 다 지키신 것을 믿는 겁니다. 내가 못 지킨 행함,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해서 천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내 대신 천벌을 받으셨기에 나 대신 죄 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아... 내 죄가 없어졌구나... 이것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구나. 이것을 믿는 겁니다.
이번이 성탄절 주간인데, 나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그것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날. 그래서 너무나 기쁜 겁니다.
다시 성경 본문에 돌아가 보면,
[약 2:22~24]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④ 자... 그러면,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것이었습니다. 23절 보시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 여기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 도대체 뭡니까?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겁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지 의인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었기에 믿는데로 말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는데, 우리는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할 일은 그것입니다.
사람이 믿으면, 믿는데로 말을 합니다. 이 교회는 내가 다니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내가 교회 교인이다라는 것을 믿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이 분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임을 믿으니까 말하는 것이지요. 내 아버지가 아닌데, 내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불평을 하면, 그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범사에 감사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감사가 나옵니까. 마치 내 아버지가 아니기에, 내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여기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벗이 되는 계기가 된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동일하게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도 믿음을 강조하는 겁니다.
- 자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구산역에서 버스를 타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가 떠나 갔는데, 그 사람은 여전히 구산역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버스를 탔습니까? 안탔습니까? 안 탄 겁니다. 그는 탓다라고 생각만 했지 타지는 않은 겁니다. 버스를 탓으면, 그는 구산역에 더 이상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 믿으면, 당연히 행위가 나오는 겁니다. 안 믿으니까 행함이 안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람이 믿는지 안믿는지를 어떻게 아느냐 행하는지 안행하는지 보면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관점이고, 하나님의 관점은 그 보다 더 앞서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믿는지 안믿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서도 충분히 믿는 척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외식하는 자, 위선자, 라고 예수님이 표현하셨지요.
여러분 그래서 신앙 생활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믿으면, 당연히 행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 버스가 움직이는데로 자신도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당연하지요.
믿으면, 믿은 대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함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보면서 믿음이 있구나 없구나... 이렇게 자신을 평가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당신 믿음을 가지세요. 말하면, 그러면, 믿음이 갑자기 가져 집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절대로 말 한 마디에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3:5~7]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는 단지 심고, 물주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자라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만이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지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냥 못하면, 놔 두세요. 내가 스스로 믿음을 자라게 못하는데, 왜 잔소리를 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심고, 물주는 것은 내가 해야 합니다.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내가 심고 물줘야 합니다. 그것은 내 역할합니다.
⑤ 심고, 물주는 것이 뭐냐?
그것이 바로 말씀 암송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내 머리 속에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말씀을 믿습니까...
사람들은 믿음을 크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말씀 암송은 안해요. 그러면서, 믿음이 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믿음이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믿음을 크게 하게 하시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심고, 물주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 땅에서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까. 그것은 농부가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농부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씨는 뿌렸으나 물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그 토양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여러분, 열심을 내서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그것이 심고 물주는 겁니다. 약속의 말씀을 내 머리에 자꾸 집어 넣으셔야 합니다. 하루에 150번, 100번씩, 한 구절을 되새기면서 심고 물주는 겁니다. 그러면, 언젠가 주님이 자라게 하시고, 그 말씀이 믿어지게 되고, 믿어지게 되면, 믿는대로 말씀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것을 야고보서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